대한불교조계종 강화도 보문사

도량안내


대한불교조계종 강화도 보문사


석모도 갯벌




강화갯벌은 한강, 임진강, 한탄강, 예성강 하구에 이들 강으로부터 유입된 토사가 쌓이는 곳이다. 평균 조차가 약 8m로 매우 크고 섬이 많아 갯벌이 넓게 발달한 곳이다. 인천시 강화군의 석모도는 한국관광공사가 생태관광지로 선정한 곳이기도 하다. 온 가족이 맛이나 조개를 등을 잡을 수 있어 "해산물 채취"라는 색다른 재미를 만끽 할 수 있어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며 "태초의 신비"로의 여행을 할 수 있다.
생태계 기행은 우리 자연의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하며 함께 여행길에 오른 자녀들 에게는 현장학습의 효과를 톡톡히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속성상 쇼핑 등 소비를 촉진하는 기존 관광과는 달리 자연을 보고 감상하는 것으로 경비의 지출이 적다는 장점도 있다. 흔히 하는 말로 "일석이조"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석모도 갯벌 에는 농게, 칠게, 달랑게, 갯지렁이, 민챙이, 서해비단고동, 소라, 모시조개, 대합, 상합, 동죽, 짱뚱어, 기타 다양한 해양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 갯벌체험이 적합한 장소 >
  • 민머루 해수욕장 : 칠게, 달랑게, 민챙이, 소라, 동죽, 대합 ,모시조개, 맛, 갯지렁이, 기타
  • 어류정항 부근 : 농게. 갈게. 칠게, 짱뚱어, 갯지렁이 등
  • 갯벌 위에서 채취할 수 있는 종류 : 칠게, 밤게, 민챙이, 서해비, 단고동, 딱총새우 등
  • 갯벌 속에서 채취할 수 있는 종류 : 맛, 비단조개, 동죽, 갈게, 갯지렁이 등
  • 채취방법 : 지름이 약2~3mm정도의 구멍 2개가 붙어있어 8자 모양을 하고있는 구멍을 손가락 두마디 정도를 쑤시면 조개류를 채취할수 있고 백사장에서 갯벌이 시작되는 부분의 돌을 뒤집으면 게를 발견할 수 있음. 갯벌에서 비교적 큰 구멍을 깊히 파면 갈게를 볼 수 있고 갯벌에서 멀리 바다쪽으로 가면 모래가 유입되어 퇴적된 곳에는 대합, 상합 등 큰 종류의 조개를 볼 수 있음. 준비물 : 모종삽

※ 위 내용은 석모도 넷 (www.sukmodo.net) 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민머루 해수욕장




배에서 내려 보문사 방향으로 전득이라는 산고개에 올라서면 바다와 예전 염전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고개를 내려와 계속 직진하면 해수욕장으로 가는 표지판을 따라 좌회전하여 폐염전터를 따라 끝까지 가면 경북슈퍼 앞으로 직진하면 해수욕장에 다다른다. 숙박을 예정하고 출발 하였다면 해수욕장 입구 언덕(삼거리)에 오르기 전 우측으로 가면 민박마을이 있다.(일주일전 미리 예약을 해두어야 깨끗하고 시설이 좋은 방을 구할 수 있다.)
이곳의 해수욕장은 폭50m에 길이가 약 1km의 모래사장과 바닷물이 빠지면 수십만평의 갯벌이 나타나 갯벌체험이 제격인 곳 이다.
물이 빠지면 맨발로 갯벌에 걸어 들어가 갯벌의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수 있고 게, 소라 같은 바다생물들이 물 빠진 자리를 어지럽게 오간다. 백사장으로 부터 약 1Km까지는 모래가 뻘과 섞여있어 신발을 신고도 조개를 잡을 수 있다.
특히 대학생들의 학술탐사와 MT장소로 유명하고 가족단위 여행과 유치원생과 초중고생의 생태교육(갯벌체험)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민머루 해수욕장의 넓은 갯벌과 모래는 원적외선 방출량이 많고 미네랄 성분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각종 부인병과 신경통 뿐만아니라 특히, 여성들의 피부미용에 효과가 좋다고 한다.
영화 <시월애> 촬영을 나왔던 영화배우 이정재가 이 곳 개흙으로 머드팩을 했다고 해 많은 이들이 개흙을 퍼가고 있는 상태다. 이곳은 자연환경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어 이곳의 갯벌에는 각종 희귀조류가 관찰되고 있으며 특히 세계적으로 몇 마리 안되는 저어새의 서식지로 2000년 7월 3일부로 천연기념물 제419호로 지정되었다. 또한 갯벌 단위면적당 미생물의 개체수가 서해를 통틀어 최고로 많다고 한다. 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이곳 해수욕장 주변은 사진작가들의 유명한 촬영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민머루 해수욕장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곳으로 아담하고 깨끗하여 한번 찾았던 사람은 일년에도 몇번씩 다녀간다.
한국관광공사에 지정한 생태관광지 일 정도로 게, 조개 등 갯벌 생태계가 활발하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가족들이 해산물 채취나 진흙 체험을 하는 것도 일석이조의 여행이 될 것이다. 5월에서 6월까지 민머루 해수욕장 주변에서 잡히는 강화 벤댕이의 맛은 전국에서 최고로 치며 값도 저렴하다.

※ 위 내용은 석모도 넷 (www.sukmodo.net) 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낙조




낙조의 황홀경… 강화도가 부른다. 단군왕검이래 근세까지 우리의 역사를 보여주는 많은 유적, 수평선 너머로 붉게 떨어지는 서해의 낙조와 싱싱한 해산물, 사람에 치이고 일에 찌든 사람들을 쓰다듬어 주는 바람…
넓고 조용한 강화는 도시사람들이 잠시나마 버거운 일상을 잊어버리기에 알맞은 곳이다. 8개의 보물을 비롯한 97종의 문화재, 포구마다 늘어선 횟집, 다양한 음식점과 숙박시설, 10곳의 낚시터, 여러 특산물에 이르기까지 강화는 관광객이 원하는 모든 것을 그 안에서 해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강화의 기행로를 소개한다. 강화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강화대교를 건너 바로 다리 아래 왼쪽길로 300여m쯤 가면 강화역사관이 있다. 석기시대이후 이 섬에 살아온 선조들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이곳은 강화 여행의 시작이면서 끝이기도 하다. 역사관을 거쳐 다시 48번 국도를 타면 바로 강화읍. 읍내에서는 고려때 궁궐지와 강화향교, 강화산성 등을 구경할 수 있다. 강화가는 날을 끝자리가 2일, 7일인 때에 맞춘다면 읍내에서 시골장터의 냄새가 물씬 나는 강화 5일장도 만날 수 있다. 읍내를 벗어나 찬우물 약수터쪽으로 향하는 301번 지방도는 하루 일정의 강화여행에서 가장 많이 애용되는 길. 울창한 숲 사잇길로 시원 하게 달리다 보면 갈림길마다 어디로 방향을 잡는가에 따라 각기 색다른 곳에 닿게 된다.
길직리 마그내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길을 잡고 갈라져 3㎞쯤 가면 김포시가 마주보이는 해안. 이곳에서는 1∼2㎞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덕진진, 광성보, 초지진 등 3곳의 국방유적을 볼 수 있다. 또 이 삼거리에서 계속 직진하면 기원372년 고구려 소수림왕때 아도화상이 창건 했다는 전등사와 그 절을 품고있는 삼랑성을 거쳐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했다는 마니산 초입의 정수사 등이 기다린다. 꼭대기에 참성단이 있는 해발 468m의 마니산은 한나절 등산코스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 정수사 입구에서 12㎞쯤 달리면 닿는 선수리나 찬우물에서 14㎞쯤 떨어진 외포리, 섬 북서쪽의 창후리는 강화의 대표적인 포구. 끼룩거리 는 갈매기 소리를 들으며 밴댕이나 병어같이 맛있고 싱싱한 생선회 맛을 보는 것은 강화여행에서 놓칠 수 없는 일이다.
좀더 시간이 있다면 외포나 창후리에서 배를 타고 보문사와 눈썹바위가 있는 석모도, 폐위된 연산군이 유배됐던 교동도로 가보는 일정을 짤 수도 있다. 강화의 북쪽에는 남쪽보다 유명한 유적이 적지만 교과서에 우리나라 고인돌의 대표처럼 자주 나오던 부근리 고인돌을 비롯해 많은 고인돌이 이쪽에 있다. 강화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는 해질 무렵의 낙조 구경. 여러 곳에서 근사한 낙조를 볼 수 있지만 특히 장화리의 낙조 조망지와 고려산 적석사 인근의 낙조대가 유명하다.
강화에는 화문석과 인삼, 순무, 쌀, 영지 등의 특산품도 많다. 이런 특산물은 강화읍에 있는 토산품판매장에서 언제나 살 수 있지만 길거리 에서 파는 상인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그동안 강화여행에서 가장 큰 문제였던 48번 국도의 교통체증은 강화대교 확장과 함께 거의 사라져 이제는 이 섬을 찾는데 한결 여유가 생겼다. 이 섬을 하루일정으로 구경하는 방법중 아침나절에는 동쪽해안을 따라 햇살을 받는 유적들을 보고 저녁나절에는 서쪽해안을 돌며 서해로 지는 햇살을 보는 것이 좋다는 한 강화여행 전문가의 조언도 귀담아 둘만 하다.

마니산




강화군 화도면 에 위치한 산으로 꼭대기에 참성단이 있다. 한반도의 가운데에 위치하는 마니산은 한라산의 백록담과 백두산의 천지까지의 거리가 똑 같다고 한다. 주간조선(1999.4.8)에 의하면, 마니산은 전국에서 기가 가장 센 곳이라고 하며, 봄 부터 가을까지 많은 등산객이 찾는 곳이다.
마니산과 동막해수욕장 선수포구로 이어지는 강화도의 남쪽 해안 일대는 강화도 여행의 가장 화려한 코스로 등산은 물론 곳곳에 둘러볼 한 사찰, 유적지들이 많다. 특히 첨성단이나 마니산 정상에 서면 서해의 갯벌과 해수가 보이고 동쪽으로는 강화와 김포일대의 평야지대가 보인다. 마니산 입구엔 취사가 가능한 야영장과 놀이장, 산책로도 있다.
<마니산 국립공원> 입장료 : 어른 1.500원, 청소년 800원, 어린이 500원, 노인 무료
문의처 : ☎ 032-937-1624
1. 산행코스
① 상방리관리사무소 → 기도원 → 계단로 → 정상 (헬기장) → 하산 → 약 2시간 소요
② 상방리관리사무소 → 단군로 → 정상(헬기장) → 하산 → 약 2시간 30분 소요
③ 상방리 관리사무소 → 계단로(단군로) → 정상 → 함허동천(정수사) 약 3시간 소요

2. 교통
대중교통 : 신촌(324-0611)에서 마니산까지 가는 직행버스 일일 16회(첫6:40, 막8:30)이용. 또는 강화읍행 직행버스(10~15분 간격)를 이용 강화읍에서 마니산행 버스를 이용하면 됨. 하산 후 함허동천(정수사)에서는 강화읍으로 가는 군내버스를 이용(1일 8회운행)
도로안내 :
① 서울 행주대교 남단 → 김포 방향 48번 국도 → 김포 → 강화대교 → 알미골3거리 좌회전 → 찬우물3거리 우회전 → 인산3거리 좌회전 → 화도초등학교앞 좌회전 → 마니산관리사무소
② 서울행주대교 남단 → 김포방향 48번 국도 → 김포누산리 → 양곡 → 김포대명리 → 강화초지대교 → 온수리 → 마니산관리사무소

강화성


강화성은 고종때 강화도로 천도하며 쌓은 성이다. 몽고의 침략에 항전한 호국의 현장인 셈이다.
1259년 고려가 개성으로 환도하기 전 성을 헐었는데 조선초에 다시 보수됐다가 1637년 병자호란때 청군의 침략으로 파괴됐다. 1677년 조선 숙종때 다시 대대적인 개축공사를 했다. 근세엔 병인, 신미양요와 일본의 침략을 겪은 아픔의 현장이다. 성안에는 남쪽에 안파루, 서쪽에 첨화루, 동쪽에 망한루, 그리고 북쪽에 진송루 등 4대문이 있었다. 온갖 시련을 겪고 세월이 흐르며 성곽과 문루가 없어졌지만 지난 1974년에 남문을, 1977년엔 북문을 복원했고 서문은 다시 개축했다. 북문에서는 멀리 휴전선 넘어 장단과 개성의 송악산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고향을 북쪽에 두고 있는 이들이 설움을 달래는 곳이기도 하다.
소재지 :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 3(사적 제132호)

강화 역사관


강화성은 고려 고종때 강화도로 천도하며 쌓은 성이다. 몽고의 침략에 항전한 호국의 현장인 셈이다. 1259년 고려가 개성을 환도하기 전 성을 헐었는데 조선초에 다시 보수됐다가 1637년 병자호란때 청군의 침략으로 파괴됐다. 1677년 조선 숙종때 다시 대대적인 개축공사를 했다. 하지만 병자호란 (1637년)때 청군의 침략으로 다시 파괴되는 등 곡절을 겪었다. 근세엔 병인 · 신미양요와 일본의 침략을 겪은 아픔의 현장이다.
성안에는 남쪽에 안파루, 서쪽에 첨화루, 동쪽에 망한루, 그리고 북쪽에 진송루 등 4대문이 있었다. 온갖 시련을 겪고 세월이 흐르며 성곽과 문루가 없어졌지만 지난 1974년에 남문을, 1977년엔 북문을 복원했고 서문은 다시 개축했다. 북문에서는 멀리 휴전선 넘어 장단과 개성의 송악산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고향을 북쪽에 두고 있는 이들은 이곳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1. 교통
강화터미널에서 내려 10여분만 걸어가면 바로 눈에 들어온다.
2. 유적
강화성 서문옆에는 연무당 옛터가 있다. 이곳은 강화부의 군사들이 훈련하던 집이다. 일본의 강압으로 한일수호조약(1876년)을 체결한 뼈아픈 곳이기도 하다. 이 조약으로 인해 인천 ·부산·원산의 항구가 개항되고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지만, 결국 일본에게 36년간 나라를 빼앗기는 결과를 맞았다. 신문물이 들어온 현장임과 동시에 민족시련이 시작된 반성의 터다.
강화성에는 동서 양쪽에 두 개의 수문이 있는데 이 안에는 김상용 순절비가 있다. 병자호란(1636년) 당시 우의정이었던 김상용 선생이 강화에 와 있다가 청군의 침입(1637년)으로 강화성이 함락되자 강화성 남문에서 화약에 불을 질러 자살했다. 이 충절을 기리기 위해 김상용 선생의 후손인 김창국이 남문터에 세운 비(1698 년)가 바로 김상용 순절비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글씨가 마멸되자 후손인 강화유수 김매순이 원비와 같이 새비를 세우고 옛비를 비각 밑에 묻었다(1834년). 지난 1976년 11월 23일 고려궁터 진입로 확장공사로 비각을 옮기던 중에 지하에서 원비가 출토됐다. 지금은 원래의 비와 함께 새비가 나란히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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