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강화도 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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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강화도 보문사


전등사




381년(소수림왕 11) 아도(阿道) 화상이 창건하여 진종사(眞宗寺) 라 이름하였다. 그 후 고려 고종 46년 몽골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하여 강화도 삼랑성 내에 가궐을 지은 후 진종사를 크게 중창 시켰으며 충렬왕(1282년)때 왕비인 정화궁주가 진종사에 경전과 옥등을 시주한 것을 계기로 “전동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이때 정화궁주는 승려 인기(印奇)에게 《대장경》을 인간(印刊), 이 절에 봉안하도록 하였다고도 전해진다. 전등사에는 전등사 대웅전(大雄殿), 전등사 약사전(藥師殿), 전등사 범종(梵鐘) 등의 보물이 있으며, 대웅전에는 1544년(중종 39) 정수사(淨水寺)에서 개판(改版)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목판 104장이 보관되어 있다.
광해군 때 대웅전의 조성을 맡은 도편수가 술집 주모에게 돈과 집물을 맡겼다가 도망가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 형상을 대웅전 처마 아래에 나체로 추녀를 받치고 있도록 한 나녀상(裸女像) 이야기는 유명하며 아직도 대웅전의 네 기둥위에 네명의 나녀가 추녀를 떠받치고 있다.

백련사




백련사(白蓮寺)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231번지 고려산(高麗山)에 자리하고 있다. 416년(고구려 장수왕4)에 한 인도 승려가 창건했다고 전해오지만 고증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자세한 연혁을 의해당 처활(義海堂 處活) 스님의 부도와 비석에서 볼 수 있다. 1881년(고종 18)에는 벽담 대규(碧潭大奎) 스님이 화주가 되어 현왕도를 조성하였고, 1888년 (고종 25) 에도 벽담스님이 지장보살도. 신중도. 칠성도. 독성도 등을 조성하여 법당에 봉안하였다. 1905년에는 인암(忍庵)스님이 보월(寶月)스님과 함께 퇴락한 절을 중창하였다.1908년에 불상을 개금하고 각 전각에 탱화를 봉안하였으니, 지금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아미타후불탱화도 이 때에 조성된 것이다. 1986년에는 범종각이 지어 졌고, 관음전의 현판을 지금의 극락전으로 바꾸었다. 현존하는 전각은 극락전과 삼성각. 칠성각. 범종각. 요사 등이 있으며, 성보 문화재로는 아미타 후불탱화, 지장보살도, 현황도, 신중도, 관음보살도 등이 있다.

적석사




적석사(積石寺)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74번지 고려산(高麗山)에 자리하고 있다.
절의 서쪽 봉우리인 낙조봉(落照峰)은 해질녘의 낙조가 대단히 아름다워 강화십경(江華十景)의 하나로 일컬어지고 있다. <전등본말사지>에 의하면 백련사. 청련사 등과 함께 416년에 창건되었고, 처음의 이름은 적련사(赤蓮寺)였다고 전한다. 1714년(숙종 40)에 세위진 <고려산적석사지비(高麗山積石寺之碑)>에 의하면 적석사는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에 도읍을 옮기고 있을 때 임금의 거처가 되기도 했던 곳이며, 삼별초의 항거 때 선원사(禪源寺) 등 다른 큰절들은 피해를 보았지만 적석사는 온전하게 유지되었다고 한다. 현재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용왕각. 종각. 요사 2동 등이 있다.
대웅보전은 팔작지붕에 정면3칸, 측면 2칸으로 안에 석가. 관음. 대세지보살의 석가삼존상을 비롯해 치성광여래. 산신상. 독성상 및 목조지장보살입상이 있다. 또 불화로는 영상회상도. 산신탱화. 독성탱화. 칠성탱화가 있다. 그밖에 낙조봉을 오르는 길목의 큰 바위 아래 치성광여래. 산신. 독성상을 모시고 산신각이라 부르고 있다. 대웅전 왼쪽 아래편에 오래전부터 있던 우물은 돌 틈에서 맑고 시원한 물이 흘러나오는데, 나라에 무슨 변란이 일어나가나 흉년이 들면 갑자기 말라버리거나 흐려져서 먹을 수가 없게 된다고 한다. 실제로 한일합방 때에는 물이 말라버렸고, 6. 25때도 별안간 물이 흐려져 먹지 못하였다고 한다

정수사




정수사는 강화군 마리산(摩利山) 동쪽 화도면 사기리 464-3번지에 자리한 사찰이다.
정수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신라시대 639년(선덕왕 8)에 회정(懷正)선사가 마니산 참성단(塹城壇)을 배관 (拜觀)한 뒤 그 동쪽 기슭에 앞이 훤히 트이고 밝은 땅을 보고 불제자가 가히 선정삼매(禪定三昧)를 정수(精修)할 곳이라 하면서 사찰을 짓고 정수사(精修寺)라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1903년에 지어진 <정수사산령각중건기(淨水寺山靈閣重建記)>와 <강도지 (江都誌)>에는 창건년대를 정확히 밝힐 수 없다고 하였으니, 신라시대의 창건설은 설화일 가능성이 높다. 사찰이름과 관련된 또 다른 일화는 조선시대 1426년(세종 8)에 함허 기화(涵虛己和)선사가 중창할 때 법당 서쪽에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 이름을 '정수(精修)'에서 '정수(淨水)' 로 고쳤다한다.
성보 문화재로 대웅보전에 아미타불상을 비롯한 관음보살좌상. 지장보살좌상의 아미타삼존불이 있고, 불화로 아미타후불탱· 지장탱화· 칠성탱화· 현왕탱화· 신중탱화 및 삼성각의 목각산신탱· 독성탱화· 칠성탱화· 용왕탱화가 있으며, 부도인 함허대사 승탑이 있다. 근처에는 조선의 고승인 함허 선사가 수행하던 곳을 기리기 위해 이름 붙인 함허동천(涵虛洞泉) 계곡이 있는데, 깊고 물이 더 없이 맑다.

청련사


청련사(靑漣寺)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550번지 고려산(高麗山)에 자리한 사찰이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이 절은 416년(고구려 장수왕 4)에 한 인도 승려가 중국 진나라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와 창건했다고 한다.
이 인도 승려가 강화(江華)에 이르러 다섯 가지 빛깔의 연꽃이 활짝 핀 연못을 발견하고 다섯 송이의 연꽃을 꺾어서 공중으로 날려 연꽃이 떨어지는 곳마다 절을 창건하였는데 이곳에 청련이 떨어졌기 때문에 청련사라고 하였다 한다. 한편 1957년에 편찬된 경기도지(京畿道誌)>에는 고려 충렬왕 대의 창건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어떤 근거에서 나온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 으며, 일설에는 조선조에 창건한 것으로도 추정하고 있다. 근대에 와서 1821년(순조 21)에 비구니 포겸(包謙)스님이 폐허된 절을 중창 했고, 1906 년에 비구니 계근(戒根)스님이 법당을 중수하였다.
1919년에는 비구니 정현(淨賢)스님이 범종을 새로 조성하였으며 1936년에는 당우를 전면적으로 중수하여 가람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1984년 원통암과 합친 뒤 1987년에 원통전을 완전히 헐고 새로 지었다. 1821년의 중창 이후 줄곧 비구니 스님들의 수도처로 주위 경치가 뛰어나며 숲과 샘도 아주 좋다. 그래서 흔히 절을 '국정상하사(國淨上下寺)'라 부르며, 때문에 청련사. 원통사(圓通寺)라는 이름보다 국정승방(國淨僧房)이라는 속칭이 더욱 유명하다'라고 해서 옛날부터 청련사라는 이름 외에 '국정사' 또는 '원통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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