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강화도 보문사

보문사소개


대한불교조계종 강화도 보문사


춘성(春城, 1891∼1977)스님은 한국 선종의 맥을 이은 선승으로서. 또한 한평생 탈속한 무애도인(無碍 道人)으로 무소유의 정신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던 근대의 대표적 고승 가운 데 한분이다. 스님은 특히 1960 년대 후반 보문사 회주로 주석하면서 절의 사격을 높이기 도 하였다. 스님의 출가 전 이야기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1891년(고종 28) 3월 30일 강원도 설악동에서 태어났는데, 이름은 이창림(李昌林)이었다고 한다. 1901년 입산하여 1903년 백담사(白潭寺)에서 만해 한용운(韓龍雲)스님을 스승으로 출가했고, 이후 십여년 동안 백담사에서 만해스님을 모시며 공부했다. 그 뒤 석왕사(釋王寺)에서 불교전문강원 (佛敎專門講院)의 대교과(大 敎科)를 수료한 뒤 1919년에 설악산 신흥사의 주지, 그리고 안변 석왕사(釋王寺) 주지를 역임했다. 그리고 1929년 다시 만공 월면(滿空月面)의 문하에 들어가 사사한 뒤 만공스님의 법을 이어 받았다.
춘성스님을 말할 때는 흔히 그의 기행(奇行)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은 본래 스님은 여러 경전을 두루 읽어 박식했고 또 글재주도 뛰어났다고 한다. 그래서 만공선사의 문하에 들어가 화두를 받는 과정에서도 만공선사가 춘성스님에게 "스님은 너무 문자 에 밝으니 화두를 줄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그러자 스님은 갖고 있던 경전을 전부 버리고 이후부터는 내심자증(內心自證)에만 몰두하고 사교입선(捨 敎入禪), 곧 교를 버리고 오로지 선에 열중했다고 한다. 이후 스님은 수행에 몰두하는 한편 다른 몇몇 사찰에서 주지를 역임하면서 대중을 교화하엿다. 6·25 때는 혼자 빈 절이 된 의정부 망월사(望月寺)를 지켰고 전쟁 뒤에는 절을 중수하기도 했다. 그 뒤로도 망월사를 비롯 강화도 보문사 등 여러 절의 회주 또는 주지로 있으면서 절을 중수하고 학인을 가르치며 중생을 교화하였다. 스님은 스승 만해처럼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천성을 지녀 거침없는 기행과 걸림없 는 두타행을 많이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것은 곧 스님의 탈속(脫俗)의 경지가 다른 선사(禪師)에 비해 월등함을 말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스님에 얽힌 일화도 많다. 그 하나는 스님이 백담사에서 용운스님을 스승으로 모실 때인 1910년 8월의 일이다.
그 무렵은 흉년이 계속되었고 당시에도 가뭄이 계속되었는데, 어느날 마침 하늘에서 비가 시원스레 소나기가 내릴 때였다. 당시 만해스님은「불교유신론」집필로 골몰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이상한 소리가 나기에 방문을 열고 내다보았더니 춘성스님 이 발가벗은 채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른바 탈속 무애의 경지요, 활연 대오를 내보인 셈이었다. 용운스님은 다시 한 번 춘성스님의 재질이 보통이 아님을 알고 기뻐했다고 한다. 또 한가지 일화는 6·25가 끝나고 망월사를 중수할 때의 일이다. 당시 망월사는 거의 폐허가 되어 스님은 절 주위의 소나무를 베어 재목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러다 나무를 함부로 벌목 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적발되어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경찰서 측의 질문에 예의 걸쭉한 욕이 섞인 육두문자와 잇단 선문 답(禪問答)으로 일관, 결국 조사하던 경관을 탄복시키고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풀려나기도 했다.
스님은 또한 아무 때 어느 곳에서라도 헐벗고 돈 없는 사람들을 보면 그 자리에서 입은 것 가진 것을 전부 주어버리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스님이 누구와 말하더라도 늘 욕하면서 말하곤 했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다.
그래서 스님을 `욕쟁이 스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러나 스님의 그같은 말이 곧 탈속과 무애의 경지에서 나온 것임을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면에서 스님의 진면목을 찾게 되고, 또 스님에게 매료되기도 하였다. 결국 스님은 부처님의 참뜻을 받들어 무애 하게 살다 깨친 바대로 자유롭게 지내다 입적한 고승이었던 것이다. 스님은 1977년 8월 22일 세수 87세, 법랍 74세에 봉국사에서 입적했다. 열반식은 8월 24일 화계사(華溪寺)에서 서옹(西翁) 당시 종정 및 운허, 월산, 월하 스님 등 여러 큰스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어 거행된 다비식에서 나온 사리와 재는 유언대로 서해바다에 뿌렸는데 사리는 매우 크고 영롱했다고 한다. 부도와 탑비는 현재 성남 봉국사(奉國寺)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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