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강화도 보문사

보문사소개


대한불교조계종 강화도 보문사


고려 의종(毅宗)때의 일이다. 금강산 장안사(長安寺)위에 자리 잡은 송라암(松羅庵)에서 관음기도를 올리는 한 승려(회정대사)가 있었다. 관음탄신일인 2월 19일부터천수주력 (千手呪力)으로 기도하여 관음보살을 친견하고자 지성으로 발원하였다. 3년 기도를 마치는 날 밤 꿈속에 백의(白衣)의 한 노파가 나타나 말하기를 "관음진신을 친견하려가든 해명골(解明谷, 지금의 楊口郡, 方山面)에 몰골옹(沒骨翁)과 해명방(解明方)이 살고 있을 것이니 찾아가 보라."고 하였다. 꿈에서 깬 회정대사는 해명골을 찾아가다가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노인에게 묻되, "혹시 이 고을에 몰골옹이 살고 계십니까?"라고 물었다. 노인은 대답하되, "내가 바로 몰골옹이오."라고 말하면서 반가이 맞이하는 것이었다. 하룻밤을 같이 자며 찾아온 사연을 말하였더니 그 노인은 해명방의 집을 가르쳐 주었다.
회정은 몰골옹의 말대로 그를 찾아갔는데 해명방은 없고 묘령의 처녀만이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는 회정대사를 반기면서 말하기를 "어디서 오신 스님입니까? 해명방을 무슨일로 찾으시는지요."라고 하니, 그가 찾아온 뜻을 설명하였다. 그러자 처녀는 "해명방은 나의 아버지인데 성품이 급하고 칼날 같아서 무슨 말이든지 순종을 해야지 만일 그렇지 않고 비위를 거슬리기만 하면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고 하였다.

이윽고 해명방이 나무짐을 짊어지고 오더니 눈을 부릅뜨며 말하기를 "너는 누구인데 남의 집 과년한 딸애와 어울려서 수작을 하느냐?"고 하며 지게 작대기로 마구 때리는 것이었다. 회정은 그래도 아무 변명을 하지 않고, "죽을 죄를 지었소이다. 잘못을 용서하여 주십시오"하고 무조건 사과하니 해명방은 "이놈, 담이 크구나. 일이 이미 여기에 이르렀으니 부득이 내 사위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딸에게 물 한 그릇을 가져 오게 하고는 그 자리에서 혼례를 치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웃방을 신방(新房)으로 정해주기까지 하였다.
회정은 마굴(魔窟)에 빠진 것 같아서 아무 흥미와 이렇다 할 애정도 없이 47일을 지낸 후 장인인 해명방에게 "고향으로 보내주십시오. 잠깐 다녀오겠습니다"고 하였더니, 해명방은 "그 문수(文殊, 몰골옹을 가리킴)란 영감이 공연히 너에게 내 집을 가리켜 주어서 남의 딸만 버려 놓았구나. 가고 싶거든 어서 빨리 가거라."고 하였다. 회정은 다시 몰골옹에게로 가서 말하니 그는 회정을 보고 "그대는 보현보살(해명방)과 관음보살(해명방의 딸)을 버리고 어디로 가려고 하느냐? 해명방은 보현보살이요, 네 처는 곧 관음보살의 진신인 것을...."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깜짝 놀란 회정은 해명방에게로 다시 찾아갔더니 집도 없고 해명방과 그녀도 없었다. 회정은 발길을 돌려 몰골옹을 찾아갔으나, 역시 그의 집도 몰골옹도 없었다.
회정은 생각다 못해 금강산으로 다시 돌아와 관음보살을 만나게 해 달라고 3,7일간 기도를 했는데 기도 회향날 밤 꿈속에 백의부인이 나타나서 "네가 오늘 만폭동(萬瀑洞)에 올라가면 관음진신을 다시 만날터이니 가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회정이 아침 일찍이 만폭동의 폭포수를 끼고 올라가는 도중이었는데 해명방의 집에서 같이 살던 딸, 즉 그의 아내가 개울가에서 머리를 감고 있지 않은가. 하도 반가와서 "여보, 여보, 당신이 여기서 무얼하는거요."하고 달려갔으나, 그녀는 파란 새(觀音鳥)가 되어 훨훨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회정은 미친 듯이 그녀를 뒤쫓아 가다가 물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울같은 물(影娥池) 속에 산 언덕이 비치고 그곳에 여자와 굴(窟)문이 비쳐 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머리를 돌려 쳐다보니 그녀가 굴문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회정은 반가움에 칡넝쿨을 헤치며 허우단심 올라갔더니 그녀가 굴문 앞에서 반가이 맞아 주었다. "지날달 해명골에서 47일 동안 저와 한이불 속에서 같이 살던 인연은 백겁천겁이라도 만나기 어려운 인연입니다. 앞으로도 기도정진을 지성으로 하십시오. 모골옹은 문수보살의 화신이요, 해명방은 보현보살의 현신인데, 스님은 보덕(普德)화상의 후신이요, 나는 항상 이 굴에 있을 것입니다. 나는 스님뿐만 아니라 인연이 있는 이가 찾아오면 그 인연을 따라 몸을 나타내 보일 것입니다."라는 말은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회정대사는 크게 느낀 바 있어 그곳 석벽에 `상주진신 관자재보덕굴(常住眞身 觀自在普德窟)'이라 새겨 놓았다. 그는 바위 초암을 지어 삼백일간 용맹기도 정진을 하니 마침내 원통삼매(圓通三昧)를 성취하였던 것이다.
비록 설화적인 내용이지만, 위의 글을 통해 회정스님의 면모는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고 하겠다. 우선 회정스님은 금강산 지역에서 수행에 전념하신 분이었으며, 고구려 보덕화상의 후신이라고 인식될 만큼 당시 사회에서 상당한 위상을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문수·관음·보현의 세 보살을 친견할 정도로 뛰어난 수행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특히 관음신앙에 남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금강산 보덕굴은 진신관음(眞身觀音)이 상주하는 관음성지로 자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뛰어난 수행력을 바탕으로 관음보살을 친견했던 회정스님이 또 하나의 관음성지를 가꾸고자 보덕암을 떠나 이곳 강화도로 왔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여하튼 보문사의 창건과 회정스님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보다 활발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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