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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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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문사 작성일2016.03.31 조회4,00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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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그곳은 따뜻하신지요 2006년 10월 포항의 추운 어느 날 퇴근시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와, 가을이지만 기온이 떨어져 제법 쌀쌀해 추위가 온몸을 침범하고 있었습니다. 기차를 타려고 역에 도착했을 때, 계절에 맞지 않는 얇은 옷을 입으신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하이얀 서리가 온통 머리를 덮은 할머니가 요동 없이 길모퉁이에 가만히 서 계셨습니다. 퇴근 길 열차시간에 맞추기에 바쁜 다른 이들에게 할머니의 존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 종종 걸음으로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열차시간이 다 되었지만, 혼자 서 계시는 할머니를 차마 지나칠 수 없게 한 그 무엇이 저를 할머니 앞에 멈춰 서게 만들었습니다. 파랗게 질린 입술 사이로 누군가 준 듯한 붕어빵 조각을 입에 물고 계셨습니다. "할머니, 댁이 어디세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꼬깃꼬깃 접은 메모지 한 장을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거기에는 전화번호가 하나 적혀있었습니다. 그 번호로 전화를 하니 중년의 아주머니가 하시는 말씀이 남의 일에 참견 말고 가까운 파출소에 모셔다 드리라고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할머니 혼자 계시게 할 수가 없어서 근처 파출소로 할머니를 모시고 갔습니다. 경찰관 아저씨도 대수롭지 않은 듯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기다리면 누가 모시로 올 거라고 하셨습니다. 잠시 후, 칠순 즈음 되어 보이는 할머니께서 오셔서 할머니를 모시고 가려고 하셨습니다. 추위에 떨던 할머니는 마음의 안정을 찾으셨는지 제 손을 꼭 쥐고는 같이 가자는 시늉을 하셨습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한 지붕 아래 여러 집이 살아가는 작은 방에 도착하니 모시러 온 할머니께서 자초지종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아까 전화 받았던 중년의 아주머니가 할머니의 하나뿐인 딸이며 제법 잘 살고 있고, 할머니는 몇 년 전부터 실어증과 약간의 치매에 청력도 정상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옆방의 할머니는 따님이 조금의 수고비를 드리고 할머니 곁에 있게 하신 간병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턱없이 적은 수고비에 그저 할머니가 길을 잃어 연락이 오면 모시고 오는 정도의 일만 도우실 뿐이랍니다. 할머니를 자리에 눕게 하고 보일러를 돌리려고 보니 기름이 없어 조금의 기름을 주문해 넣고 보일러를 작동하고 옆방 할머니께 부탁하여 따뜻한 죽 한 그릇을 할머니가 드시게 하고 나니 시간이 9시를 넘기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잘 계세요.“ 하고 내민 저의 손을 쥐고, 할머니는 놓아 주지 않고 더듬거리시며 자고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십니다. 할 수 없이 집에는 사무실에 처리 할 일이 있어 일을 보고 근처 찜질방에서 자고 가겠노라고 아내에게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장사를 하셔서 모은 제법 많은 돈을 사위의 사업 자금으로 몽땅 내어 주시고는 할머니의 몸이 불편해지자 달랑 서너평의 방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저와 할머니의 만남은 여러 번 있었고, 그 해 12월의 어느 날, 경주 집에 다 왔을 때 파출소에서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것이 할머니와 저의 마지막 만남이 되었고 할머니는 한 평의 무덤도 갖지 못한 채 화장 되어 그렇게 가고 싶어 하시던 고향의 뒷산에 뿌려졌습니다. "할머니...그곳은 따뜻하신지요?" 염려해주신 할머니와 세달 친구인 저는, 오늘도 추위가 오면 할머니가 다시 길모퉁이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걸어간답니다. - 행복닷컴 감동 플래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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