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색은 심산유곡의 고목이지만 마음만은 꽃=
어느 해 섣달그믐 경에 바쁘게 심부름을 가던
이치 쥬로우(市十郞)는 30냥의 돈주머니를 잃었다.
30냥이라면 당시로는 대단히 큰돈이었다.
주인 돈인데다가 엄청 큰 액수를 잃은 쥬로우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오던 길을 되짚어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그 때 거지 하나가 "무엇을 찾습니까?
혹시 돈주머니가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쥬로우는 너무 기뻐서 돈을 잃게 된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 돈은 제가 주웠습니다.
분명 잃은 사람이 찾으러 올 거라고 생각해서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돈을 잃은 분이 분명하다면
바로 돌려 드리겠습니다."라는 말에
쥬로우가 돈주머니의 모양부터 액수까지
그리고 함께 들어있던 증서 등을 말하자
헤이(兵衛)라는 거지는"틀림없으시군요."하면서 건네주었다.
쥬로우는 한편으로 놀랍고, 고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사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중 다섯 냥을 거지에게 주면서
"이것만이라도 사례금으로 생각하고..." 하면서 돈을 내밀자
헤이는 머리를 가로 저으며
"아닙니다. 받을 수 없습니다."하면서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 돈은 이미 없어진 것과 다름없는데,
당신 덕분에 다시 돌아왔으니 전부 내 것으로 할 수는 없네.
적지만 받아주게. 자네가 안 받는다면 내 마음이 불편하지."하고
억지로 쥐어주려 하자 다시 거지는
"잘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내가 그 다섯 냥을 받으려했다면
30냥을 돌려주었겠습니까?
욕심이 나서 주운 것이 아닙니다.
돈을 잃은 이의 안타까운 마음을 생각했지요.
자신의 돈이 아니고 주인의 심부름을 가다가 잃은 돈이라면
더욱 난처한 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딴 사람이 주워 돌려주지 않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하고
제가 보관했던 것이지요. 이제 당사자에게 돌려주었으니
저는 제 갈 길을 가겠습니다."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곳을 떠났다.
쥬로우는 뒤따라 뛰어가서
"오늘 날씨도 춥고 하니 가시는 길에 술이라도 한 잔 드시오.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이요. 꼭 좀 받아 주었으면 하오."
이 말에 헤이는,"술값 정도라면 받겠습니다."하면서
마지못해 받는 그에게 쥬로우가 이름을 묻자
어디 사는 아무개라고 일러 주었다.
쥬로우가 집으로 돌아가 주인에게 있었던 일을 고하자
주인은"어찌하든 그 다섯 냥을 그 사람에게 주고 싶구나.
내일 찾아가서 내 말을 하고 꼭 전해주도록 하라."
이튿날 하인의 우두머리와 함께 그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이웃에 사는 이가 들려준 이야기는
"그 사람 어젯밤 어디선가 돈을 받아 왔다고 하면서
내게 보여 주었지요. 그러더니 거지친구들을 불러
술과 안주를 준비해서 나누어 먹더군요.
그런데 평소에 잘 먹지 않던 안주와 술을 너무 먹은 탓인지
그만 새벽녘에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쥬로는 크게 놀라 헤이의 시체를 보자고 했다.
"이 시신을 잘 거두고 싶네.
부디 소홀히 하는 일 없도록 부탁하네."
돌아가 주인에게 고하자 주인은 곧바로 사람을 보내어
시신을 수습해서 그 돈 다섯 냥으로 후하게 장사를 지내어
무연고 묘에 모셨다.
- 거지가 주운 돈/일본의 훈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