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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문사 작성일2016.01.21 조회3,8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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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매일 하루에 3백 배, 많을 때는 천 배를 한다는 것. 그것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그렇게 한다는 것. 과연 그대는 해낼 수 있겠는가? 아마도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 젓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걸 해내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되물어올지도 모른다. 보통의 각오로는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문제는 오로지 마음이다. 여기, 올 연말 6백만 배의 절 수행을 회향하는 남자가 있다. 불력회를 이끌고 있는 박종린 법사다.

| 시작이 어렵지, 시작하면 하게 된다
불교계에서 ‘박종린’이라는 이름은 꽤나 잘 알려져 있다. 평생을 동국역경원에서 역경사업에 헌신한 사람,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절을 하는 보기 드문 수행자, 6년 만에 백만 배를 회향하고, 그 뒤로 2년 만에 2백만 배, 다시 2년 만에 3백만 배를 회향한 인물. 그래서 항간에는 이론과 실천이 겸비된 대표적인 절 수행자로 박종린이라는 인물을 첫손에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저는 절 수행자가 아닌데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누구보다도 열심히 절을 해왔고, 기록적인 수행을 이어가고 있는 인물이 스스로가 절 수행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부연했다.

“저는 본래 절과 염불을 함께 해요. 절은 몸으로 하는 염불이에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인데, 사람들이 이걸 잘 몰라요. 보통 절을 하면 건강에 좋다고 하죠. 틀린 얘기는 아니에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세요. 신심 없이 절만 한다면, 그건 운동이죠. 수행이 성립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는 신심이에요. 믿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불교에서 믿음이라는 것은 부처님께 귀의하는 거예요.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칭명염불을 하고, 몸으로는 절을 합니다.”

되돌려 생각해보면 그는 늘 “나무아미타불”을 목청껏 외치며 절을 해왔다. 예외가 없었다. 불력회의 철야정진을 이끌면서도 늘 선봉에 서서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며 대중을 이끌었고, 혼자서 절을 할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되뇌었다.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늘 부처님께 의지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삼귀의 중 으뜸이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이에요. 그 다음이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가르침, 즉 진리인 거죠. 불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은 늘 부처님을 생각하고 예경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불자로서 출발점이자 곧 회향점인 거예요.”

박종린 법사의 이야기는 모두 수행의 과정에서 체험으로 얻어진 것들이다. 그는 절과 염불의 한계지점을 극복하면서 몸의 허망함을 절절히 느꼈다고 했다. 누구나 수행의 과정에서 잡다한 것들이 일어나 몸과 마음, 정신을 어지럽히는 경험을 하게 되며, 그 난관을 돌파하면 근본으로 돌아가고 참생명으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절과 염불을 함께 하는 것이 신구의 삼업을 정화하는 수행이라고 보는 그의 관점은 모두 이 같은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종린 법사가 절 수행을 시작한 건 그의 나이 마흔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역시 간화선 수행에 매료돼 미친 듯이 매달리던 때가 있었다. 물론 마흔 살이 되기 훨씬 이전의 이야기다. 대구 출신인 그는 구산 스님, 성철 스님, 향곡 스님 같은 한국불교의 기라성 같은 노장들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이것만 하면 되는구나 하는 믿음이 있었다. 피가 뜨거운 시절이었고, 그 혈기로 밀어붙였다. 그러나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그는 답을 찾지 못했다. 당시는 유신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에도 군사독재가 이어지는 격랑의 시기였다. 삶의 해답이 무엇인지 골몰했지만,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간화선 수행을 그만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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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혜만 남고 자비가 실종됐다
그러던 그가 어느 덧 마흔이라는 나이를 맞이하게 됐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불혹’이라 했지만, 그는 아직 인생의 뜻도 세우지 못한 채 방황만 거듭하고 있었다. 그 시기에 그가 발견한 게 염불이었다. 그리고 가장 지극히 하는 염불은 절이라는 생각에 염불과 절을 함께 했다.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백만 배라는 목표를 세웠고, 하루 한 번씩 매일 108배를 마음먹었다. 하지만 하루 한 번 108배로는 목표가 요원해 보였다. 도리어 주말마다 1,080배를 했음에도 1년에 십만 배를 달성하기도 어려웠다.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1년에 두 번 하던 3천 배를 매달 한 번씩 하고 108배도 하루 세 번씩 했다. 기록도 꼼꼼하게 했다. 그랬더니 1년 만에 16만 배를 달성했다. 자신감이 불쑥 자라났다. 그렇게 6년, 그는 비로소 처음 목표로 했던 백만 배를 달성하게 됐다. 그 뒤로는 매일 1,080배를 나누어 하면서 주말마다 3천 배를 했다. 그렇게 그는 10년 만에 3백만 배를 회향했다. 박 법사가 처음 절을 시작한 게 1997년이다. 그리고 올해 연말이면 6백만 배라는 기록을 작성하게 된다. 꼭 19년 만이다. 그는 말한다. 시작이 어렵지, 시작하고 나면 하게 된다고. 

그가 수행을 이어오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종교인으로서의 믿음이었다. 

“믿음이라는 것은 끝없는 힘을 줍니다. 불교가 종교일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불교는 그렇지 않아 보여요. 여기저기서 불교는 철학이라고 인식하고 있어요.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불교는 분명히 대단히 정교한 철학이에요. 그렇다고 철학에서 그쳐버리면 신앙이 강조될 필요가 없죠. 철학은 지혜의 영역이에요. 신앙이 없다는 건 믿음이 빈약하다는 겁니다.”

박종린 법사가 말하는 불교는 두 개의 축이 있다. 지혜와 자비. 그러나 현재 한국불교는 지혜만 남고 자비가 사라졌다. 우선 불교를 ‘믿는’ 불자들이 적다. 불교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늘어간다. 불자들의 믿음이 부족하다는 것은 가슴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과 이어진다. 가슴으로 공감하지 못하면 자발적인 실천이 따라올 수 없다. 공부만 남고, 실천이 사라진 불교. 그것이 지금의 한국불교이며 부처님이 말씀하신 핵심 교리 중 ‘동체대비심’이 실종된 상황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무엇이 원인일까. 깨달아야 한다는 관념적 강박이 지나치게 지배적인 상황이 직접적 원인이 아닐까, 하고 그는 말했다. 화두 들고 앉아서 깨우쳐라, 깨달음이 바로 네 곁에 있는데 너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흔하게 듣는 법문들이다. 박 법사가 되물었다.

“진짜 깨달은 자가 있다면,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에 선방에 앉아 있으라고만 할까요? 왜 아무도 대중들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지 않는 겁니까? 아프고 힘겹고 자꾸만 꺾이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때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실제 그 속에 들어가서 그들과 아픔을 함께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대체 무엇입니까?”


| 광장으로 나아가는 부처의 삶
사실 최근 그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에 대해 묻고 싶었다. 그러나 박 법사가 되물어온 저 질문 속에 이미 답이 들어있었다. 그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위해 불력회 회원들과 거리에서 절을 하고,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광화문 광장으로 나아가 철야정진을 했다. 종단의 잘잘못을 거침없이 이야기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수행을 하며 느낀 그대로, 부처가 되기 위한 삶이 아니라 부처로 살기 위한 삶으로. 박 법사는 그런 길을 택했다.

“10년이 훌쩍 넘도록 온 마음과 온 몸으로 수행을 해왔어요. 하다 보니 이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인데, 몰랐구나. 알아도 믿음이 약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부터라도 부처님의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해고자들을 위해 거리에서 함께 절을 했고, 광장에서 절을 하며 희생자들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그게 믿음을 가진 불자가 해야 할 일 아닌가요?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를 비롯한 불력회 회원들은 기꺼이 거리에서 몸을 낮췄다. 차가운 땅바닥에 말 그대로 몸을 던지고 또 던졌다. 철야정진을 할 때처럼 그는 목청껏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며 회원들을 이끌었고, 적게는 50~60명, 많을 때는 100여 명의 회원들이 그와 함께 거리에서, 광장에서 엎드렸다. 불력회는 올해로 12년째 활동하고 있는 순수 신행단체다. 일개 신행단체가 사회적 이슈에 몸을 아끼지 않고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드문 일이었다. 지극한 마음은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불력회 회원들의 이런 모습에 지나가던 행인들도 함께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함께 절을 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히 동참해야 하는 것 아니냐.”였다. 박 법사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불교계 누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동참하지 않았을 뿐,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대한 갈증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술회했다.

그는 곧 평생을 몸바쳐온 동국역경원에서 정년퇴임하게 된다. 다음 계획을 물었다. 박종린 법사는 세월호 때 철야정진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세월호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한동안 광장에서 함께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고 했다.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그런 자리에 참여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수행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했더니,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우선 불자들이 자기정체성부터 확고히 합시다. 머리로만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 소중한 몸을 부처님 앞에 내려놓았으면 합니다. 내 몸의 건강을 생각해서 절을 하는 것도 좋지만, 불자라면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절이 염불로 전환돼야 합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 나아가 몸을 내려놓으십시오. 믿음을 가지면 확신이 생기고, 염불과 절을 함께하면 믿음이 더욱 굳건해집니다. 믿음 없는 깨달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불자들이 부처가 되려하지 말고 부처로 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매일 지치지 않고 절 수행을 이어가는 남자. 그는 단단해 보이는 몸만큼이나 마음도 강인한 6백만 배의 사나이였다. 인사와 함께 내미는 그의 손길은 참 따뜻했다. 이토록 아픈 시대를 이겨내고 모두가 행복한 그날이 올 수 있기를, 모두가 자기 삶을 부처로 살아가는 그날이 오기를.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확신이, 그의 따뜻한 손길로부터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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