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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가대사 전법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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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보문사 작성일2016.09.28 조회4,3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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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 혜가대사(二祖 慧可大師)가 남긴 전법게(傳法偈, 후계자에게 법을 전함)

전해지는 2종류의 전법게(傳法偈)


 

本來緣有地 (본래연유지) : 본디 인연은 땅이 있어서

從地種花生 (종지종화생) : 땅을 따라서 씨앗과 꽃이 피고

當本元無地 (당본원무지) : 애당초 땅이 있지 않았다면

花從何處生 (화종하처생) : 꽃이 어디를 따라 피어나리오.

 

다른 버전 전법게



本來緣有地 (본래연유지) : 본래부터 마음 땅이 있었기에

因地種華生 (인지종화생) : 그 땅에 씨를 심어 꽃이 피지만,  

本來無有種 (본래무유종) : 본래 종자도 있는 것이 아니며

華亦不曾生 (화역부증생) : 꽃도 역시 나는 것 아니다.

 

 

 

참회법문(懺悔法問) 이조 혜가(487-593)

 

소림사 경내에는 입설정(立雪亭)으로 명명된 건물이 있다. 초조 달마와 이조 혜가가 처음 만난 인연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석승가라고 불리는 혜가는 출가 전에 유학에 정통하고 특히 시경과 역경에 정통한 대학자였다. 이러한 지식들은 삶의 지혜와 처세를 위한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인 생사윤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을 알고 구도의 길을 찾아 30세에 향산사로 출가한다.

 

달마에 의한 선불교가 전파되기 이전 이미 중국에는 유교, 도교와 더불어 불교도 기복 신앙의 형태로 중국인들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호국과 기복신앙 형태의 불교에 출가한 혜가는 궁극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수행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고뇌와 번민을 계속하던 중 꿈에 현몽을 받아 숭산 소림사의 달마를 찾아 나선다.

 

스승인 보정선사의 허가를 얻어 향산사에서 단숨에 숭산의 달마동굴 앞에 섰지만 달마는 이러한 혜가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동굴 앞을 지킨 지 3일이 지났다. 그사이 눈이 내려 눈이 발목을 덮고 다음날 새벽이 되자 눈은 어느덧 무릎을 덮고 있었다.

 

“눈 속에 서서 그대는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 가?”
“여러 중생을 널리 제도할 수 있는 도를 향해 나아갈 참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부처님의 위 없는 도는 여러 겁을 부지런히 닦았더라도 행하기 어려운 일을 행해야 하고 참기 어려운 일을 참아야 하거늘, 어찌 작은 공덕과 얇은 지혜를 소지한자가 경솔한 행동과 교만한 마음으로 참 법을 바라는가? 헛수고만 할 뿐이니 돌아가라”

 

이미 되돌아 갈 수 없는 아라한 경지에 이른 혜가는

“부처님도 도를 구할 때 뼈를 깨뜨려서 골수를 빼내고 피를 뽑아서 주린 이를 구하고 벼랑에서 떨어진 호랑이에게 자신을 먹이로 던져주었다. 부처님이 이러하거늘 나는 어떠한가!”

하면서 혜가는 망설이지 않고 자신의 팔 한쪽을 잘랐다.

 

이에 달마는 “부처님도 처음 도를 구하실 때는 몸을 던지셨다. 그대가 팔 하나를 끊으면서 법을 구하니 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구나”

“부처님의 심인(心印)은 남에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법의 진수인 이입사행(二入四行)수행방법을 전수한다. 이입(二入)이란 도와 실천을 통해 법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며 사행(四行)이란 원망을 지었으니 억울함을 참고, 무슨 일이든 인연으로 받아드리며, 사물을 탐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진리대로 살라는 것이다. 언뜻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골수와 같은 진리의 말씀에 머리가 숙여진다.

 

혜가는 달마를 스승으로 모시고 달마동굴 가까이 토굴을 짓고 수행하면서 많은 선문답을 통해 달마의 도를 얻으려고 했지만 3년이 지나도록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자기의 심정을 고백한다.

“스승이시어 마음이 불안합니다. 부디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그대의 마음을 가지고 오라. 편안하게 해주리라.”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이미 나는 그대의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

안심법문(安心法問)으로 인해 혜가는 무심(無心)을 얻었으며 달마로부터 의발과 전법계를 전수받고 선종의 이조가 된다.

 

훗날 혜가는 문둥병이 걸려 찾아온 40대 거사의 법그릇을 알아본다. 머리를 깎아주고 보물 찬(璨)자를 써 승찬(僧璨)으로 이름 지어주고 제자를 삼아 6동안 수행케 한다.

때가 이르자 승찬에게 전법계와 의발을 전수하여 곧 닥칠 국난을 피하도록 더 깊은 산골로 피난시키고 자신은 저잣거리로 나와 무애(無礙)의 법을 편다. 기복 불교를 믿는 무리들의 시기와 모함으로 극형을 받아 107세로 생을 마감한다. 이를 혜가는 자신이 전생에 지은 묵은 허물을 벗기 위한 인과로 받아드린다.

 

 


慧可斷臂(혜가단비)

 

내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니 스님께서 제 마음을 안정되게 해 주소서.

(我心未安  請師安心)

 

마음을 가져오너라. 네 마음을 안정되게 해 주리라.

(將心來  與汝安)

 

마음을 찾아 보아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습니다.

(覓心了  不可得)

 

내가 너에게 이미 안심의 경지를 주었노라.

(與予安心竟)

 

 

 

 

직지심경(直指心經)해설 52  중국의 조사(中國 祖師)    

 

제3조 승찬 대사(僧璨大師) 1 /죄업은 본래 없다

三祖 璨大師가 問二祖曰弟子가 身纏風恙하니

請師爲我懺罪하소서 祖曰將罪來하라 與汝懺하리라

云覓罪了不可得이니다 祖曰與汝懺罪竟이니

宜依佛法僧住하라 曰某甲이 今見和尙에 已知是僧이어니와

未審何名佛法이니고 祖曰是心이 是佛이요 是心이 是法이라

佛과 法이 無二요 僧寶도 亦然이니라 曰今日에 始知罪性이

不在內外中間이라 如其心然하야 佛과 法이 無二니다 祖가

深器之러라


3조 승찬대사가 2조 혜가대사에게 물었다.

“제자가 몸에 풍병을 앓고 있으니 청컨대 스님께서는

저를 위하여 죄를 참회하게 하여주십시오.”

 

혜가대사가 말하였다.

“죄를 가져오너라. 그대에게 참회하게 하여 주리라.”

 

“죄를 찾아보아도 마침내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대에게 죄를 참회하여주는 것을 마쳤느니라.

마땅히 불법승을 의지하여 살라.”

 

“저는 지금 화상을 뵙고 이미 스님은 알았습니다만

무엇을 불과 법이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마음이 불이며, 마음이 법이니라. 불과 법은 둘이 아니며

승보도 역시 그러하니라.”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본성이 안과 밖과 중간에도 있지 아니하며,

마음이 그러하듯이 불과 법이 둘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혜가대사는 그가 법의 그릇임을 깊이 인정하였다.


해설 ;

3조 승찬(僧璨,?-606)대사는

수나라의 양제 대업 2년 10월 5일(서기 606년)에 입적하였다.

태어나신 날자가 알려지지 않아서 세수가 얼마인지는 모른다.

 

입적하시고 150년 뒤에 당나라 현종 황제가 감지선사(鑑智禪師)라고 시호를 올렸다.

탑호는 각적(覺寂)이라하였으며 당시 제상으로 있던 방관(房琯)이라는

사람이 비문을 지었다.

 

어느 날 혜가 대사에게 40이 넘었음직한 사람이 찾아와서

자신은 풍병(風病)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 고백하면서

본문과 같은 대화가 있게 되었다.

 

풍병이란 지금의 말로는 문둥병환자이다.

40세가 넘기까지 온 세상이 다 혐오하여 아희들은

그와 같은 병자를 보면 돌을 던지기도 한다.

그 몹쓸 병을 앓으면서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겠는가.

 

온 세상 사람들이 병을 혐오하여 던지는 돌에 맞은 아픔보다도

자신은 무슨 몹쓸 죄업을 지었기에

이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미워하고 혐오하는 그 매와

돌멩이가 더욱 가슴 아팠던 것이다.

 

수많은 명의들을 찾아서 처방을 받았으나

끝내 치료하지 못하고 아마도 최후라는 비장한 각오로

산중에 유명한 도승이 있다는 소문만을 듣고

무턱대고 찾아왔으리라.

 

그러기에 부처님도 법도 스님도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찾아 온 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가는 일이다. 

훌륭한 지혜를 갖춘 진실한 성인이란 유형무형의

모든 존재에 대한 실상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존재에 대한 바른 안목도 중요하지만

특히 인간에 대한 바른 안목과 사람들이 잘못알고 있는

죄업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비로소 성인이라고 할 수 있다.

 

혜가대사는 승찬대사가

인간의 죄업 때문에 몹쓸 병을 앓고 있다고 하는

잘못된 견해를 간단하게 설파하여

그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이와 같은 설법을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한다.

 

죄업이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인데 사람들은 잘못알고

그 죄업이라는 환영(幻影)을 스스로 가설해 놓고

그것에 속박당하여 고통을 받고 있다.

죄업이 실체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

 

이 사실은 승찬대사가 무능하여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죄업이 실체가 없는 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찾을 수 없다.

실로 죄업이란 이름뿐이다.

마치 토끼의 뿔과 같고 거북의 털과 같은 존재다.

승찬대사는 그동안 죄업이라는 환영에 사로잡혀 있었을 뿐이다.

 

<천수경>에도 “죄업이란 자체의 성품이 없다.

다만 사람이 마음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도 실체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알면 죄업이란 것도 또한 사라진다.

그래서 죄업도 없어지고 마음도 없어지고 두 가지가 다 텅 비어버리면

이러한 것이 진실한 참회다

 

[罪無自性從心起 心若滅時罪亦亡 罪亡心滅兩俱空 是卽名爲眞懺悔].”

라고하였다.

 

없는 죄업을 없다고 보지 못하고 확연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하여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은 성인의 가르침이 아니다.

불교를 가르친다고 하면서 삿된 법을 가르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래서 바른 견해[正見]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승찬대사는 간단한 대화를 통해서 마음이 밝아지고

그토록 무겁게 짓눌러오던 죄업은 어느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길로 출가하여 삼보를 믿게 되고 급기야는 부처님의 정법안장까지

물려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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